올해, 이정재는 계절처럼 새로웠다.
- 바다색 턱시도 재킷, 하얀색 턱시도
셔츠, 검정색 보타이 모두 톰 포드.
최근 ‘이정재 20주년 특별전’이
있었어요.
선배들도 안 하신 분이
많은데, 부담스러웠어요. 이제 정말 ‘막차’인 건가 싶기도 하고요. 하하.
한편으론 올해 이정재를 처음 만난 것 같기도
합니다.
연기하는 게 썩 즐겁지
않던 시기가 있었어요. 좋은 캐릭터가 한동안 없었죠. 올해는 흥미로운 캐릭터들을 연기하다 보니까 연기가 다시 재미있어졌어요. 관객 분들도 저의
‘흥’을 본 것 같아요.
지금 <빅매치> 촬영 직전이고, 연달아
출연할 작품이 정해져 있죠?
그래서인지 시나리오가 안 들어와요. “시나리오가
쌓였나 보다. 우리 거 읽겠어”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.
2월에 인터뷰했을 때, <신세계>와
<관상> 모두 흥행을 예측하는 데 조심스러워했어요.
솔직히 <관상>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잘될
거라는 예감을 좀 했어요. 요즘 개봉하는 영화 안에는 관객을 생각하게 하는 신이나 대사가 적었던 것 같아요. 근데 <관상>은 관객을
고민하게 하는 편이었어요. 하지만 수양대군의 반응이 이렇게 좋을지는 예상 못했어요. 거친 캐릭터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, 제가 표현할 수 있는
마초여서 다행이었죠. 그럼에도 저보단 설경구, 황정민, 최민식 같은 선 굵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 연습을 많이 했어요. 어느
순간부터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, 자신감도 생기면서 아이디어도 따라왔죠.
<신세계>는요?
<신세계>에서 연기한 이자성은 사실
묻어가는 거였죠. 하하. 최민식, 황정민한테 너무 밟히지만 말아야지 하는 움찔거림이랄까요? ‘나도 살아 있다!’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그런
몸부림? 근데 또 너무 선배들한테 대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했어요. 예전에 뻗대는 식으로 연기하다가 굉장히 안 좋았던 경험이 있어요.
< 신세계>는 하면 할수록 ‘과연 맞는 표현인가’ 하는 의구심이 굉장히 많았어요.
그런 불안이 영화에서도 보였어요. 그게 그대로 이자성
같았습니다.
연기를 안 하고 표현할
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니까 엄청 힘들었던 것 같아요. 반면 <관상>은 하면서 굉장히 재밌었어요. 재미를 붙이다 보니 오히려 오버
액션이 되기도 했죠. 혼자 신나서 도를 넘을 때도 있었어요. <신세계>는 하면 할수록 좀 답답했고, <관상>은 하면 할수록
시원했죠.
두 영화 모두 연기에 대한 호평이
있었죠.
이제 한 20년 하다
보니 아주 좋다거나 기분이 축 처지지는 않아요.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. 괜찮은 평가를 못 받아도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
계속해야 하니까요. 예전엔 한없이 안 좋을 때는 집 밖에도 안 나갔지만, 어차피 해도 해도 모자라고 만족감이 들지 않아요. 그냥 할 뿐이죠.
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좋은 반응에 대해 감사함이 생겼다는 거예요. 이젠 감사함이 확 다가와요.
예전엔 당연하다고
생각했나요?
좀 형식적이었어요.
크기와 깊이를 몰랐달까요?
새삼 이정재란 이름이 희미했던 시절이
생각나네요.
한창 쉴 때, 사진전에
갔는데 고등학생 무리가 있는 거예요. 애들이 삿대질하면서 “저거 연예인 아냐? 누구지” 이러며 몰라보는 거예요. 그때 진짜 충격이었어요. 하하.
< 모래시계> 때 좋았고 <태양은 없다> 때가 최고였어요. 연기도 인정받고, 광고도 엄청 했죠. 그러곤 일을 많이 안 하니까
인지도가 많이 떨어지고, 시나리오 들어오는 횟수도 적어졌어요. 가끔 출연한 영화는 성공을 못하니까 ‘이정재는 티켓 파워 없는 배우구나’라는
인식도 생겼죠. 그때는 ‘어디까지 내려가는 건가’ 싶을 정도였어요. 올해 <관상>, <신세계> 모두 잘됐지만, 그런
거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작품들, 새로운 것들에 다 묻힐 거예요. 그래도 이젠 연기에 집중하려고요.
결혼은
멀어지는 건가요?
결혼은 일보다는
나이하고 상관 있는 것 같아요. 남자가 한창 혈기가 왕성할 때는 나가서 놀거나, 연애를 하거나, 에너지를 써야지만 잠을 푹 자고, 휴식이 돼요.
근데 나이를 먹으면 에너지가 별로 없어요. 하하. 자연적으로 그렇게 돼요. 옛날에는 촬영이 새벽에 끝나도 친구들이 있는 곳에 무조건 갔어요.
이제는 힘들어요. 사실, 돌아다녀야 새로운 여자도 만나고, 소개도 받는데….